('주52시간' 발묶인 해외현장)②베트남, '기회의 땅'이지만…공사 중단 속출
우기 등으로 '공기' 맞추기 어려워…폭우 아니면 공사 강행하기도
"고용 창출 효과 미흡"…"해외 현장 '주 52시간' 예외 적용 필요"
공개 2023-07-27 17:30:01
 
동남아시아 지역 기후는 일반적으로 '우기'와 '건기'로 나뉜다. 비가 집중적으로 쏟아지는 우기에는 외부 활동이 쉽지 않다. 특히 기후에 많은 영향을 받는 건설 현장은 우기에 공사 진행이 더욱 어렵다. 이 때문에 비가 내리지 않는 건기에 공사를 몰아서 진행해야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한국인 근로자들은 '주 52시간제'에 발목이 잡혀 이것 또한 쉽지 않은 실정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해외 파견 건설근로자에 대해 특별연장근로 기간을 늘려줬지만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IB토마토>는 동남아 국가 중 한 곳인 베트남 건설 현장을 방문해 현실을 살펴보고 과거와 현재 현지 근무 경험이 있는 국내 근로자들의 목소리를 담았다.(편집자주)
 
[IB토마토 노제욱 기자] 건설업계에서 베트남은 '기회의 땅'으로 불린다. 최근 베트남은 정부의 주도 아래 신도시 및 인프라 개발을 적극적으로 추진 중이기 때문이다. 이미 국내 건설사들이 다수 진출해 있으며, 수주를 모색하고 있는 기업도 대다수다.
 
그러나 수주했다고 해서 사업 추진이 탄탄대로는 아니다. 물론 어느 지역이나 애로사항이 있는 것은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베트남 등 동남아 지역은 우기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즉, 기후 영향으로 공사가 차질을 빚는 경우가 자주 발생하는 실정이다.
 
이러한 상황은 베트남 등에 나가 있는 국내 근로자에 적용되는 '주 52시간제'와도 연결되는 문제다. 공사 기간을 맞추기 위한 시간은 정해져 있는데, 기후로 인해 공사 중단이 발생하는 상황에서 '주 52시간제'가 우리 기업들의 발목을 잡는다는 지적이 있어 왔다. <IB토마토>가 현지에서 만난 국내 건설사 관계자들도 근로제도 개선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베트남 모 건설현장. (사진=노제욱 기자)
 
"시간당 100mm씩 내리는 날도 있어 공사 중단 불가피"
 
베트남의 연간 강수량은 우리나라와 별 차이가 없지만, 문제는 우기에 1년 강수량의 80~90%가 내린다는 점이다. 5월부터 10월까지가 우기로 분류된다. 따라서 이 기간에는 공사 중단이 잦을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베트남에서만 수년째 근무하고 있는 A건설사 한 관계자는 "우기에는 시간당 100mm씩 오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경우는 감당이 안 된다"라며 "배수시설 또한 잘 마련돼 있지 않은 현실이라 공사 진행은 아예 불가능하다"라고 말했다.
 
역시 베트남에서 근무하고 있는 B건설사 한 관계자도 "현재 다수의 국내 건설사가 베트남에 진출해 있는데, 우기로 인해 공사 중단 등 어려움은 모두 겪을 것이라고 본다"라고 전했다.
 
베트남 현지 건설사의 경우에는 비가 너무 자주 오다 보니 폭우가 아닌 보슬비가 내릴 때는 그냥 공사를 강행하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빗물에 의한 안전사고 발생 등의 우려를 피할 수 없다.
 
베트남 모 건설현장에서 만난 현지 근로자 N씨는 "우기 때는 비가 자주 내리기 때문에 쏟아지지 않는 정도라면 그냥 근무를 정상적으로 진행하는 편"이라며 "그래서 가끔 안전사고가 발생하기도 한다"라고 설명했다.
 
"고용 창출 등 긍정 효과 전혀 없어"…근로제도 개선 목소리
 
때문에 이들은 해외건설 현장만이라도 유연한 근무제도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아파트, 빌라 등 외부 공사가 마무리되고 내부 공사만 남은 경우에는 기후와 크게 상관이 없지만, 외부공사로만 주로 이뤄질 때는 강수량 등에 큰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B건설사 관계자는 "교량공사, 터널공사 등은 우기에 영향을 특히 많이 받는 공사"라며 "해당 현장의 경우 폭우 등으로 인해 공사 중단 등이 타 현장 대비 많기 때문에 해당 현장만이라도 주 52시간제 예외 적용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주 52시간제'도 문제지만 우기 중에서도 특히 비가 잦은 시기에는 아예 공식적으로 전 직원에 휴가를 부여하는 등의 근로제도 개선이 이뤄지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다른 건설사 관계자는 '주 52시간제'로 인해 아직도 허위보고 등의 문제가 있음을 지적했다. 공식적으로는 휴게 시간이라고 보고를 올리고, 실제로는 현장에 투입되는 경우가 여전히 있다는 것이다.
 
A건설사 관계자는 "하루에 9시간 근무를 하는데, 공사 현장은 통상적으로 토요일까지 주 6일 일을 한다"라며 "그럼 주 54시간이 돼버리는데 토요일의 경우 7시간 근무로 보고를 하고 실제로는 2시간 정도 더 근무하는 것이 실상"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주 52시간제'의 취지는 노동 시간을 이전 대비 줄이는 만큼 인력을 더 채용해 고용 창출 효과도 누리는 것을 기대하고 시행된 것으로 알고 있다"라며 "그러나 해외 건설 현장의 현실적인 상황은 전혀 그렇지 않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근로자는 이어 "인건비 문제 등으로 기존 인력이 추가 근무를 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또한 한국인만이 할 수 있는 업무가 있어 추가 근무가 불가피한 점도 있다"라며 "특히 동남아 건설시장은 국제적으로 '블루오션'으로 평가받는 곳이다. 근로제도가 좀 더 유연해진다면 국내 건설사들의 동남아 진출이 더 활발히 이뤄질 것이라고 본다"라고도 말했다.
 
 
실제로 베트남 건설시장만 해도 '먹거리'가 많은 축에 속한다. 해외건설협회에 따르면 올해 베트남 건설시장 규모는 지난해 대비 12.6% 성장해 465억달러 규모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향후 성장 전망도 긍정적이다.
 
해외건설협회 관계자는 "베트남은 중국 대체 세계공장으로 부상과 역할 확대로 관련 산업시설 건설, 공공투자 지출 증대로 북남고속도로 및 고속철도, 롱탄신국제공항 등 교통인프라 사업 발주가 계속될 전망"이라며 "제8차 국가전력개발계획 승인으로 관련 신재생에너지 사업 추진도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라고 말했다.
 
한편, 노동 전문가도 동남아 지역의 우기뿐 아니라 국가마다 기후적인 애로사항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를 고려한 좀 더 유연한 근무제도 개선이 필요함을 지적했다.
 
전혜선 열린노무법인 노무사는 "동남아에는 우기, 중동은 모래폭풍, 몽골의 경우는 1년 가까이 땅이 얼어 있어 해당 기간 공사가 어렵기 때문에 일정 기간 집중적인 근로는 불가피해 보인다"라며 "따라서 해외건설 현장 특성에 맞는 노동제도 개선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당장 주변 국가인 일본의 경우 해외현장에 대해 연장근로에 대한 상한 규제가 건설업에는 현재 적용되지 않고 있다"라며 "우리나라도 이를 참고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노제욱 기자 jewookism@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