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신평, 신용평가보고서 깜깜이 수정에 '흔들린 신뢰'
보험사 바뀐 회계제도 적용 첫 보고서부터 혼란
공개 2023-07-07 06:00:00
[IB토마토 장용준 기자] 신용평가사가 한 금융사의 신용평가보고서를 펴낸 뒤, 사후 수정 요청이 들어오자 스리슬쩍 내용을 수정하고 며칠이 흐른 뒤까지도 이 같은 사실을 고지하지 않는 '깜깜이 수정'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 공정한 잣대로 신용을 평가해야 할 신용평가사가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업무인 신용평가보고서 작성과 사후관리에 문제점을 노출하면서 시장과 투자자의 신뢰도 흔들릴 수 있는 여지를 남겼다.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기업들. (사진=연합뉴스)
 
위험자산 비중 확대 초점 맞춘 A보험사 보고서
 
6일 <IB토마토> 취재 결과 한국신용평가(한신평)는 지난 6월27일 A보험사의 정기신용평가보고서를 발간했다. 이 보고서에서 특히 눈길을 끌었던 내용은 2022년 말 퇴직연금 약 3조원 유출에 대응하기 위한 환매조건부채권(RP) 차입금 상환 과정에서 현금성자산 및 채권 매각에 따라 위험자산 비중이 높아졌다는 부분이다.
 
한신평은 보고서 2쪽에서 '국공채, 특수채 등 보유채권 규모를 고려할 때 유동성 관리는 가능할 전망이나, 현금성자산 및 채권 매각에 따른 위험자산 비중(2023년 3월 말: 64.2%)이 높아진 점은 부담요인이다'라고 언급했다. 아울러 K-ICS 대응력 점검이 필요하다는 지적과 함께 손해보험 업계 평균 대비 위험자산 비중이 높다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이는 자산건전성 지표 상으로 2023년 1분기 위험자산 비중이 업계 평균인 56.6%보다 7.6%p나 높은 것으로 분석됐다는 게 근거였다.
 
위험자산 비중은 전체 운용자산에서 △주식 △출자금 △수익증권 △일반대출채권 △부동산 등이 차지하는 비율을 뜻하는 것으로, 통상적으로 이 비중이 확대될수록 자본적정성 지표와 수익 변동성에 부정적으로 평가된다.
 
한신평의 보고서에 따르면, A보험사는 올해 1분기에 지난해 대비 △주식 △출자금 △부동산 항목에서는 자산 규모가 감소했으나 △수익증권 △외화 수익증권 △기타유가증권 △대출채권에서는 큰 폭의 증가세를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두고 새 회계기준(IFRS17·IFRS9)으로 바뀌면서 자산 재분류가 이뤄졌고, 기존에는 특별계정으로 제외했던 퇴직연금(원리금 보장형)까지 운용자산으로 계산하게 되면서 나온 결과라는 풀이가 가능한 상황이었다.
 
한국신용평가가 6월27일 내놓은 A보험사 신용평가보고서. 왼쪽은 수정 전, 오른쪽은 수정 후. [사진=한국신용평가]
 
며칠 새 뒤바뀐 위험자산 비중
 
그런데 며칠 사이 반전이 일어났다. 한신평 측이 보고서를 수정한 것이다. 제목과 작성일시조차 차이가 없는 수정 보고서에서는 A보험사의 '위험자산 비중'이 기존보다 12.5%p나 낮은 '51.7%'로 뒤바뀌어 있었다. 이로 인해 A보험사는 업계에서 위험자산 비중이 가장 큰 폭으로 올랐던 곳에서 안정적으로 유지가 되고 있는 곳으로 탈바꿈했다.
 
이 보고서에서 가장 큰 변화는 기존에 0원으로 잡혀 있던 외화채권이 1조7310억원으로 조정되고, 1조9550억원에 달했던 외화 수익증권이 2240억원으로 바뀐 것이다. 첫 보고서에서는 외화채권이 외화 수익증권으로 계정 재분류된 것으로 봤으나 두번째 보고서에서는 외화채권과 외화 수익증권이 개별산입된 것이다.
 
기존(왼쪽) 0원으로 잡혀 있던 외화채권이 1조7310억원(오른쪽)으로 조정되고, 1조9550억원에 달했던 외화 수익증권이 2240억원으로 조정됐다. (사진=한국기업평가)
 
그런데 기존 보고서 8쪽에 기재돼 있던 '다만, 손해보험 업계 평균 대비 위험자산비중이 높고'라는 문구는 수정 보고서에도 그대로 남아 있어 해당 수치 수정을 위해 급조된 것으로 비친다.
 
이번 보고서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보험업계의 특성상 회사마다 자료를 공개하는 수준이 달랐을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신평사 보고서와 회사의 실제 재무제표, 사업보고서, 감사보고서 등의 수치 사이에 괴리나 해석차도 발생할 수 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한신평이 A보험사의 보고서에서 수치 오류를 발견했다면, 그것이 해당 회사의 지적이나 추가 자료 보충으로 인한 것이었는지 혹은 보고서를 작성한 연구원의 단순실수였는지 밝히거나 최소한 수정 여부에 대한 고지를 했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한신평 관계자는 <IB토마토>와의 통화에서 "이번 보고서는 회사가 공시한 감사보고서를 바탕으로 작성했으나 해당 회사 측에서 7월3일 수정 요청이 들어와 7월4일 수정이 된 것"이라면서 "보고서 수정이 드문 일은 아니며 바뀐 회계제도가 적용된 첫 보고서다 보니 수정요소가 발생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보고서 수정과 관련해 특별한 고지를 해야 한다는 자체 프로세스나 매뉴얼은 없는 것으로 안다"라고 덧붙였다.
 
통상적으로 신평사가 작성하는 보고서는 시장과 투자자들에게 투자지침서로 여겨진다. 이 때문에 평가 대상이 되는 회사의 사업위험·경영위험·재무위험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객관적이면서도 공정한 평가가 이뤄져야 한다.
 
이번 보고서는 새롭게 바뀐 제도가 적용된 첫 사례이다 보니 해당 건만 아니라 앞으로 작성될 타 보험사들의 보고서와 관련해서도 수정 요청이 추가로 발생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신평사가 이를 받아들여 수정을 거치는 과정이 투명하지 못할 경우, 또 이후 투자자들을 위한 고지 의무를 망각할 경우 시장에 혼란을 주고 투자자들에게 신뢰를 잃어버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장용준 기자 cyongjoon@etomato.com